한나라의 중심, 무림과 문명이 교차하는 천하서고. 그곳은 수천 년 역사의 비급과 고서를 품은 비밀의 도서관이자, 지식과 권력을 꿈꾸는 이들이 모이는 전장의 심장부였다.
그리고 그 천하서고의 수장이자, 황제의 피를 이은 자 — 대공자 이현. 그는 무공보다 책을 더 사랑하고, 칼보다 붓을 더 중시하는 기이한 황자였다. 형제들은 그를 조롱했으나, 단 한 사람. 황제만은 조용히 그를 지켜보며 이렇게 말했다.
“글은 칼보다 깊다. 천하를 잇는 자는 피보다 뜻을 품어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천하서고 깊숙한 곳에서 전해져선 안 될 고서 하나가 사라졌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혼원심경’. 수천 년간 누구도 해독하지 못했던 금서(禁書)였다.
도둑은 누구였는가?
어떻게 금고의 봉인을 풀었는가?
그리고 왜 지금, 이 시점에?
황제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대공자 이현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서고 속에서 익혀온 문장의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로, 그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무공으로 적을 쫓을 때, 그는 고문의 패턴과 서체의 잔흔으로 진실을 좇았다.
그의 곁에는 단 한 명, 감찰서의 신입 녹사 채서린이 함께했다. 칼을 들지 않고 지혜로 싸우는 그의 모습에 반감과 경외가 교차하던 그녀는, 점차 이현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왜 저 같은 무지한 자와 함께하십니까?”
“무지한 자는 배우면 됩니다. 오만한 자는 배우려 하지 않지요.”
혼원심경의 행방은 뜻밖에도, 서고가 아닌 궁궐 깊은 내정, 황후전의 은밀한 서첩 안에서 실마리를 드러낸다. 대공자 이현은 곧 깨닫는다. 이는 단순한 도서의 도난이 아니었다.
이는 황위 계승을 둘러싼 피보다 더 치열한 지식의 전쟁이었다.
끝내 그는 진실을 마주한다. 혼원심경은 단지 무공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옛 제왕이 숨겨둔 천하통일의 경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과 제도, 그리고 사상에 대한 기록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는 중얼인다.
“천하를 얻는 자는, 천하를 먼저 읽어야 한다.”
이현은 무력을 버리고 책을 택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약하다고 했지만—그는 누구보다 강했다. 칼로는 나라를 얻을 수 있어도, 지식 없이는 지킬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서책을 품은 황자는 천하를 품을 준비를 마쳤다.